HOME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월급 2배에 ‘워라밸’ 보장… 공사판 뛰어든 2030 여성들

  • 관리자
  • 2023.08.05 13:13
  • 추천0
  • 댓글0
  • 조회226

월급 2배에 ‘워라밸’ 보장… 공사판 뛰어든 2030 여성들

입력
 
 수정2023.08.04. 오전 7:28
 
40세 미만 女건설 일용직 2년새 6만명 늘어

지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공사장 20층에선 벽과 문에 필름 색지를 바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4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드릴이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남성 아이돌 그룹의 신나는 댄스곡이 울려 퍼졌다. 작업자 5명의 리더 격인 이정은(26)씨가 틀어 놓은 음악이다. 이씨는 길이 1.5m, 무게 30㎏에 달하는 원통형 필름 뭉치를 안고 와서 바닥에 펼쳐 놓았다. 자로 길이를 재더니 칼을 꺼내 능숙하게 필름을 자르고 벽에 깔끔하게 붙였다.


원본보기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이정은(26)씨가 벽면 작업에 쓸 필름의 길이를 재고 있다. 34도까지 치솟은 폭염을 목에 건 휴대용 선풍기로 식히며 이씨는 빠르고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전동흔 인턴기자

이씨는 2년 전까지 공인중개사로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는 “부동산 거래가 줄면서 관두고 필름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손님 중에 여성 기술자가 많았다”며 “‘멋지다’는 생각에 덜컥 작년 8월 필름을 붙이는 공사장 일용직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남성보다 꼼꼼하고 섬세해 작업에 실수가 적고, 팀(5명)의 일하는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어 능률도 높다”고 말했다.

2030 여성이 건설 공사 현장에 부쩍 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업 일용직 중 40세 미만 여성은 최근 3년간 20% 증가했다. 2020년 267424명에서 2022년 321691명으로 약 6만명 늘었다. 같은 기간 건설업 전체 일용직 근로자도 1564144명에서 1627489명으로 6만명 증가했다. 코로나 시기 여성 취업자가 많은 서비스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남성 위주이던 건설 현장에 젊은 여성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1년 보고서에서 코로나 위기 초기인 2020년 3월에 핵심노동연령(25~54세)의 여성 취업자 수(전년 동월 대비 541000명 감소)가 남성 취업자 수(327000명 감소)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고 했다. 2030세대는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도 적다.

4개월째 타일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정모(22)씨는 작년 중고차 구입으로 빚 1000만원을 지면서 공사장에 왔다. 정씨는 “월 250만원 벌던 코로나 진단 키트 공장이 망해서 휴대전화 공장으로 옮겼는데 바로 정리해고 당했다”며 “불어나는 빚을 빨리 갚을 방법을 찾다가 공사장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제는 월 350만원씩 벌면서 빚도 200만원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는 “45㎏ 나가는 타일 한 묶음을 등에 지고 나르는 노동이 처음엔 힘들었는데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재미도 있다”고 했다. 다른 직종보다 건설 현장의 수입이 좋은 편이다.

퇴근 시간이 일정한 것도 장점이다. 박모(31)씨는 4년제 사범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 학습지 방문 교사로 일하다 코로나 여파로 그만뒀다. 그는 “1년 전 안전 감독 일을 시작했는데 오전 8시 출근에 오후 5시 퇴근으로 일이 규칙적이라 좋다”며 “월급도 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이어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야근이 잦아 아이를 키울 시간이 없을까 걱정할 일이 없다”고 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030 여성은 건설 현장 풍경도 바꾸고 있다. 지난 31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고덕산업단지 건설 현장에서 만난 여성 두 명은 “오늘은 함바집 말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한 여성의 안전 조끼에는 작은 인형이 달려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여성도 보였다. 안전모 뒤로 긴 머리카락이 날렸다. 남자 친구와 같은 디자인 티셔츠를 맞춰 입고 손잡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최모(22)씨는 “공장에서 야간 근무하다가 건강이 나빠졌는데 공사장에서 철거 일을 하던 남자 친구의 추천으로 같이 일하게 됐다”고 했다. 인근 노점상은 2030 여성을 상대로 한 장사도 준비하고 있다. 노점상 이모(39)씨는 “요새 현장 근로자 20명 중 1명은 젊은 여성인 것 같다”며 “젊은 여성이 좋아하는 철판 아이스크림을 팔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공사 현장에서 젊은 여성들이 겪는 고충도 적지 않다. 대졸 입사 시험에 떨어지고 공사장에 왔다는 최모(25)씨는 “여자 화장실이 부족해 많이 불편하다”고 했다. 이모씨는 “‘나한테 시집 와라’ 같은 성희롱성 얘기를 들을 때가 힘들다”고 했다.